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미드 카르자이 (문단 편집) === 아프가니스탄 내전, [[미국-아프가니스탄 전쟁]] === 전향한 카르자이는 2000년~2001년 유럽과 미국을 돌며 반탈레반 세력을 알리며 지지호소를 부탁하였으나 그 당시 유럽과 미국은 '''자기들 나라 밖'''에서의 탈레반의 미친 짓에만 관심이 있었지,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. [[아흐마드 샤 마수드|마수드]]와 카르자이는 [[알카에다]]와 [[탈레반]]의 커넥션, 그들이 구상하고 있는 테러계획 등을 미국에 경고하지만 상큼하게 씹힌다(...) 그러던 도중 [[9.11 테러]] 이틀 전 [[아흐마드 샤 마수드]]마저 알카에다 조직원의 자폭테러로 사망하고 만다.[* 도피처가 필요했던 알카에다가 탈레반에게 눈엣가시같던 마수드를 암살해주고 탈레반은 알카에다가 아프간에 은신하는 것을 묵인해줬다.] 그리고 이틀 후, 탈레반이 대망(大亡)의 [[9.11 테러|꾸란에서 배운 걸 엿바꿔 먹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짓]]을 벌이자 [[피꺼솟]]한 미국은 반 탈레반 세력의 중심인물로 카르자이를 선택한다. 사실 카르자이는 이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미국이 점찍어 놨었던 압둘 하크가 탈레반 전복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잠입했다가 잡혀서 처형당하면서 떠오르는 총아로 주목을 받게된다.[* 카르자이가 떠오를 수 있었던 것에는 정치적 계산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. 카르자이 본인이 아프가니스탄 명문가(왕가의 친척) 출신에다가 고학력에 영어가 되기 때문에 탈레반을 조지고 싶은 미국에게는 최고의 파트너감이고 북부동맹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조율하고 원조를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중재자이기 때문이다. 또 카르자이의 행적을 봐도 그는 모자데디 대통령 하에서 외무차관을 지내본 것 외에는 두각을 드러낼만한 정치인은 아니였다.][* 이 때문에 탈레반이나 카르자이의 정적은 그를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한다.] 2001년 10월 항구적 자유 작전이 펼쳐지고 있을 때 카르자이는 파키스탄의 퀘타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오는데, 돌아오던 중 미군의 오인사격으로 얼굴에 부상을 입고 미국에서 치료를 받았다. 그 해 12월 독일에서 열린 모임에서 아프가니스탄 과도내각을 조직하였고 카르자이는 수반이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